Cat looking for the box, And
by GHANG MUL GYUL
2019. 10.16 - 10.22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내가 그린) 수많은 고양이와 상자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 ‘개’ 동생 강실이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사실 작업실이 집과 붙어있는 형태라 하루에도 몇 번씩 강실이가 찾아와서 놀다 가곤 하는데, 매번 내가 어디 먼 곳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것처럼 반겨주는 강실이를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렇게 한바탕 환영식이 지나가고 내 곁에 찰싹 붙어 누워있는 강실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강실이한테는 내가 ‘상자’와 같은 존재인 걸까?”
사방이 고양이 그림과 박스로 가득한 작업실에 여느 때처럼 놀러 온 강실이와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고양이와 상자’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데 거의 모든 고양이가 절대적인 확률로 좋아하는 것이 상자라면, 개들에게는 그러한 대상이 무엇일까?
공? 간식? 산책? 어떤 것을 대입해도 영 석연치가 않다. 우리 개, 남의 개, 심지어 모르는 개까지 총동원하여 떠올려 봤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따르는 무언가는 없어 보였다. 결국 최근에 와서야 반려동물로 각광받기 시작한 고양이와 달리,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인간에게 필요에 의해 길들여지고 개량되어져 온 개에게는 종의 특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개가 잃어버린 것은>, 2016년 作). 그렇게 개는 본능을 잃어버리고 대신 인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문’이라고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진 대상과 마주하게 된다.
문이란 대개 얇은 판자에 경첩이 결합된 단순한 장치로, 열고 닫는 행위로 안과 밖을 이어주는 동시에 안과 밖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에게 문은 그저 열고 지나가야 할 시설물에 지나지 않지만, 때로는 답답한 현 상황에서의 돌파구나 새로운 기회로도 상징된다. 그러나 개에게는 반려인을 앗아가 버리는 잔인하고도 최악인 구조물이자 세상 전부와도 같은 반려인을 다시 개에게 돌려주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인간은 너무 바쁘고 생각이 많으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하루에도 수없이 문을 여닫으며 들어갔다 나오고 개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지만, 그동안 개에게 펼쳐질 지옥과 천국의 순간에 대해, 찰나의 기쁨만을 꿈꾸며 삶의 대부분을 문 앞에서의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당장 사람들이 하는 일과 약속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집에서 개만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인간이 없으면 스스로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그 존재들에 대해, 우리가 세상 전부인 그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작업실과 집 사이에 문을 약간 열어둔 채 작업실로 간다. 강실이가 언제든지 스스로 문을 밀고 들어와 나를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