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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we are here>


2019.2.24-3.2


신아현

관람객들은 작품의 앞에 서서 그 안에 고여있는 물을 떠 중앙에 위치한 인간의 모형에 물을 붓게 된다. 시간이 점차 지나고 많은 사람들은 물을 뿌림에 따라 그 인간을 감싸고 있었던 옷 혹은 장신구들이 녹아 내린다. 결국 인간의 모형은 뼈대 밖에 남지 않게 되어 그 모형이 남성형인지 여성형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관람객들이 능동적으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아주 작은 행위 (세례를 상징하는 소량의 물을 붓는 행위)를 했지만, 그 행위들이 모여 결국 본연의 형태를 이끌어내게 된다.

장지원

세잔으로 인한 모더니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작품의 해석은 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평론가는 예술 활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방송 또는 출판을 위한 평론을 작성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본인 작품의 감상 행위에 한해 본인은 평론가의 정의를 감상자까지 확장한다. 본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 즉 평론가는 개개인의 기억과 생각을 기반으로 각자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그 각자의 해석, 평가들은 모두 정답이다.

이혜원

나는 그렇게 버려지고 죽어간 도시 변두리의 흔적들을 찾아내 조합하고 그들을 새로운 유기체 형태로 재탄생 시켰다. 그것은 동물의 장기일 수도, 아름다운 꽃일 수도, 혹은 새로운 생명체의 형태로 인식될 수 있다. 그렇게 버려지고 불필요한 흔적들을 모아 재창조한 형태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가치 판단에 대해 다시 한번 반추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지수

사회는 개인에게 정상, 또는 표준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규격에서 벗어난 것들은 비정상으로 낙인찍힌다. 비정상의 낙인은 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결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 기준, 일반적인 것을 흉내내야 한다. 그러나 ‘정상’과 ‘표준’의 기준은 시대와 배경에 따라 변화하는 모호한 것으로, 결국 다수의 보편적인 일반성에서 만들어진 프레임이다. 프레임에서 벗어난 것들 중에 어떤 것들은 개성이 되지만 어떤 것들은 결함이 된다. 그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다수의 이익을 반영하기에 반드시 옳을 수 없다.

김민혜

개인의 불안이 모여 불안사회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재이지만 불안은 결국 마침내 언제나 개인의 것이다. 모두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회 속에서 결국 내가 온전히 아는 불안은 나의 것 뿐이다.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불안은 껍데기이고 뒷모습이다. 그 표정과 내면은 오로지 한 사람만이 아는 달의 뒷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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