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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야 전 <같은 모양의 물결은 없었다>


실재하는 소재 및 대상을 재현하는 형식의 그림은 객관적으로 접근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주관적인 시각이 개입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소재 자체의 형태를 보이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도 화가 자신의 미의식 및 미적 감각이 개재되기 마련이다. 이는 그림이란 결국 소재 및 대상에 대한 타자적인 관점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소재 및 대상 자체가 화가의 그림 그리는 행위에 대해 반응한다는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재 및 대상은 어디까지나 피동적인 존재로서만 의식하기 때문인데, 달리 생각해보면 소재 및 대상도 화가와 마주보고 있는 입장이 된다. 화가가 이 문제를 의식하게 된다면 작업과정에서 어떠한 고민을 하게 될까.

서미야는 이처럼 시각의 전도라는 방식을 통해 물상과의 교감을 중시한다. 단순히 주어진 소재를 피동적인 존재로만 인식한다면 작업 자체도 무표정한 상태가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시각은 수족관 속의 물고기를 응시하다가 깨달은 결과였다. 생선회 가게에 설치된 수족관의 물고기는 자유를 상실한 존재이다. 더구나 갇힌 상태에서 타의적으로 노출된 이중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물고기의 눈에 비친 수족관 밖의 세상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렇듯 소재의 입장에서 대응한다는 시각을 작업에 반영한다.

(중략)

그는 물고기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업과 다른 자연풍경에도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실재하는 자연풍경에 대한 서술이라는 형식을 따르면서도 눈에 보이는 사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기에 그의 풍경은 어디선가 보았음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다. 이렇게 보이는 까닭은 풍경과 마주하면서도 그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과 느끼고자 하는 것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작가적인 미의식 및 미적 감수성에 의해 여과된 자연의 이미지 혹은 실체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자연은 그저 아늑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만을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작업하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포함하여 사유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순전히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이러한 풍경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는 풍경을 하면서 환경과 상황이 전혀 다른 물고기 작업과의 정서적인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신항섭 평론글 중 발췌-

스메야 전 <같은 모양의 물결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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